본문 바로가기
한국의 역사 왕 이야기

7세기 신라 문무왕과 삼국 통일 완성 | 660년 백제 멸망부터 676년까지. 문무왕이 완성한 삼국통일의 과정

by 오늘도 좋은하루 2026. 9. 9.

신라가 삼국 사이의 오랜 경쟁을 끝내고 통일의 길을 완성할 수 있었던 시기는 문무왕의 재위 기간이었습니다.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무너뜨린 뒤 당나라까지 몰아내면서 신라의 삼국통일이 완성되었습니다.

 

7세기 신라 문무왕과 삼국 통일 완성 ❘ 660년 백제 멸망부터 676년까지. 문무왕이 완성한 삼국통일의 과정
7세기 신라 문무왕과 삼국 통일 완성 ❘ 660년 백제 멸망부터 676년까지. 문무왕이 완성한 삼국통일의 과정

백제 부흥운동을 막아냈던 문무왕

문무왕은 신라 제30대 왕으로 이름은 김법민입니다.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김유신의 누이인 문명왕후였습니다. 661년 아버지 태종무열왕이 세상을 떠나자 왕위를 이어받았습니다. 문무왕의 재위 기간은 661년부터 681년까지였습니다. 문무왕이 왕위에 올랐을 때 신라의 상황은 생각보다 안정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660년 태종무열왕과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은 당나라 군대와 함께 백제를 공격했고 결국 백제의 수도 사비성을 함락시켰습니다. 백제 왕조는 무너졌지만 그것으로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백제의 옛 지역에서는 왕조를 다시 일으키려는 움직임이 빠르게 나타났습니다.

 

백제 부흥운동의 중심에는 복신과 도침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일본에 머물고 있던 백제 왕자 부여풍을 왕으로 세우고 백제의 옛 영토를 되찾으려고 했습니다. 특히 주류성을 중심으로 세력을 모으면서 신라와 당나라가 백제 지역에 배치한 군대를 공격했습니다. 신라 입장에서는 백제를 멸망시켰다고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문무왕은 즉위하자마자 백제 부흥운동을 진압하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661년 옹산성과 우술성 등에 남아 있던 백제 세력을 공격했고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신라는 웅현성을 축조하며 백제 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했습니다. 그러나 백제의 저항은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곳곳에서 백제 유민들이 다시 모였고 신라와 당나라의 지배에 맞서 싸웠습니다. 문무왕에게 가장 부담스러웠던 것은 백제 부흥운동이 단순한 지방 반란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백제 왕족과 옛 장수들이 참여했고 일본의 지원까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신라가 백제 지역을 안정적으로 지배하려면 군사적인 진압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663년에는 백제 부흥군과의 전쟁이 더욱 치열해졌습니다. 문무왕은 김유신을 비롯한 여러 장군들과 함께 백제 부흥군의 거점을 공격했습니다. 당나라에서도 손인사가 이끄는 지원군을 파견했습니다.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은 백제 부흥군의 중심지였던 주류성을 공격했고 여러 성을 차례로 함락시켰습니다. 끝까지 저항했던 임존성까지 정복하면서 백제 부흥운동은 결정적으로 약화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사건이 바로 663년 백강 전투였습니다. 백제 부흥군을 지원하기 위해 일본에서도 수군을 파견했습니다.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은 백강에서 일본 지원군과 백제군을 격파했습니다. 이 전투의 결과 백제 부흥운동은 다시 힘을 모으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문무왕은 백제 지역의 군사적 저항을 진압하는 동시에 새로운 통치 질서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단순히 성을 점령하는 것만으로는 옛 백제 지역을 안정시키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백제의 옛 지배층과 유민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665년에는 당나라의 압박 속에서 백제 왕자 부여융과 화맹을 맺었습니다. 이는 신라와 당나라가 백제 지역을 둘러싸고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앞으로 두 나라 사이에 갈등이 커질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당나라가 백제의 옛 땅을 직접 지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신라와 당나라의 이해관계는 점점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문무왕에게 백제 멸망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백제를 무너뜨린 뒤에도 신라는 백제 지역을 안정시키기 위해 계속 군사력을 투입해야 했습니다. 동시에 북쪽에서는 여전히 고구려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결국 문무왕은 서쪽의 백제 지역과 북쪽의 고구려를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무왕에게 가장 중요한 동맹자는 당나라였습니다. 신라와 당나라는 백제를 함께 무너뜨렸고 다음 목표로 고구려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668년 고구려를 공격하는 과정에서도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은 함께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문무왕에게 당나라는 끝까지 믿을 수 있는 동맹국만은 아니었습니다.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린 뒤 당나라가 한반도 전체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문무왕은 이제 새로운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당나라와 손을 잡고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렸지만 마지막에는 당나라와 싸워야 했습니다. 결국 문무왕의 시대는 백제와 고구려를 정복하는 전쟁뿐만 아니라 당나라의 지배 의도를 막아내는 전쟁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고구려를 무너뜨리고 통일의 길을 연 문무왕

백제의 저항을 어느 정도 정리한 신라에게 다음 목표는 고구려였습니다. 고구려는 7세기 중반까지도 신라가 쉽게 상대할 수 없는 강력한 국가였습니다. 과거 수나라와 당나라의 대규모 공격을 막아냈던 경험도 있었고 넓은 영토와 강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구려 내부에서는 정치적인 갈등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연개소문이 사망한 뒤 그의 아들들 사이에서 권력 다툼이 발생했고 고구려의 지배층은 하나로 힘을 모으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습니다. 당나라는 이러한 고구려 내부의 혼란을 이용해 다시 공격을 준비했습니다. 668년 당나라 군대가 고구려를 공격했고 신라도 이에 맞춰 군사를 북쪽으로 움직였습니다. 문무왕은 신라군을 편성하여 고구려 정벌에 나섰습니다.

 

김유신은 이미 고령이었기 때문에 직접 전쟁터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신라군의 중요한 전략적 중심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문무왕은 김유신의 조언과 경험을 활용하면서 고구려 정벌을 추진했습니다. 668년 당군은 고구려의 북쪽 지역을 공격했습니다. 부여성이 함락되고 주변 여러 성이 당나라에 투항하면서 고구려의 방어선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신라군 역시 북쪽으로 진군했습니다. 문무왕은 한성주로 직접 이동해 여러 총관들에게 당군과 합류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신라군은 사천에서 고구려군을 물리친 뒤 당나라 군대와 합류했습니다. 이후 나당연합군은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을 포위했습니다. 평양성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지만 내부에서 고구려의 저항을 약화시키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결국 668년 9월 평양성이 함락되면서 고구려는 멸망했습니다. 고구려는 건국 이후 오랜 기간 동북아시아의 강국으로 존재했지만 668년을 끝으로 왕조의 역사를 마무리하게 됐습니다.

 

문무왕에게 고구려 멸망은 매우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660년 백제를 멸망시킨 데 이어 668년 고구려까지 무너지면서 한반도에서 오랫동안 이어진 삼국의 경쟁 구도가 사실상 막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도 문무왕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적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지금까지 신라와 함께 싸웠던 당나라였습니다. 당나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데 신라의 힘을 이용했지만 두 나라가 사라진 뒤에는 신라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으려 했습니다. 당나라는 백제 지역에 웅진도독부를 설치했고 고구려 지역에는 안동도호부를 설치했습니다. 이는 당나라가 백제와 고구려의 옛 땅을 신라에게 넘겨주기보다는 직접 지배하려는 의도를 보여주는 조치였습니다. 신라에게 이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신라도 막대한 희생을 치렀고 자신들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난 뒤 당나라가 오히려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고 한다면 신라는 다시 새로운 위협을 맞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문무왕은 결국 당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준비했습니다. 이때부터 나당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670년부터 676년까지 이어진 나당전쟁은 삼국통일의 마지막 단계였습니다.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 세력과도 협력하면서 당나라의 세력을 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670년에는 고구려의 옛 장수 고연무와 신라의 설오유가 각각 군사를 이끌고 압록강을 넘어 당나라 세력을 공격했습니다. 이는 신라가 더 이상 당나라의 군사적 동맹자가 아니라 한반도의 지배권을 놓고 경쟁하는 세력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문무왕은 전쟁의 상황에 따라 공격과 방어를 반복하면서 당나라의 세력을 조금씩 밀어냈습니다. 당나라 역시 강력한 군대를 보내 신라를 압박했습니다. 신라는 여러 전투에서 패배하기도 했지만 전쟁 전체의 흐름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675년 매소성 전투에서 신라군이 당나라 군대를 크게 물리치면서 전세가 바뀌었습니다. 당나라의 대규모 공격을 막아내면서 신라는 한반도 중부 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결정타가 676년에 나왔습니다. 당나라 수군이 백제 지역을 통해 신라를 공격하려 했지만 기벌포에서 신라군에게 패배했습니다. 기벌포 전투에서 신라가 승리하면서 당나라의 한반도 지배 시도는 사실상 좌절되었습니다. 676년 기벌포 전투는 문무왕 시대를 대표하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660년 백제를 멸망시키고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만으로는 신라가 독자적인 통일 국가를 만들 수 없었습니다. 당나라라는 외부 세력이 한반도에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당나라 세력을 몰아낸 676년이 삼국통일 완성의 중요한 기준으로 평가됩니다.

 

당나라 세력을 몰아내고 통일을 완성한 문무왕

문무왕 시대를 이야기할 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전쟁이 무려 20년 가까이 이어졌다는 점입니다. 661년 왕위에 오른 뒤 68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문무왕의 삶은 거의 전쟁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661년에는 백제 부흥운동을 진압해야 했고 663년에는 백제 부흥군과 일본 지원군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668년에는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전쟁을 치렀고 670년 이후에는 당나라와 싸워야 했습니다. 문무왕이 왕위에 있던 기간 자체가 신라의 국가적 생존과 영토 확장을 결정짓는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특히 문무왕이 높게 평가되는 이유는 전쟁의 방향을 계속 바꾸면서도 최종적인 목표를 놓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당나라와 협력해야 했지만 당나라의 지배 의도가 분명해지자 과감하게 적으로 돌렸습니다. 당나라와의 전쟁은 신라에게 매우 위험한 선택이었습니다. 당나라는 당시 동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고구려와도 여러 차례 전쟁을 벌였고 넓은 영토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당나라와 신라가 정면으로 맞선다는 것은 신라에게 엄청난 부담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문무왕은 당나라의 지배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의 옛 지역에서 당나라 세력과 계속 충돌했습니다. 고구려 유민과 백제 유민의 움직임도 신라에게 중요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문무왕은 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당나라의 지배력을 약화시키려고 했습니다. 670년 이후 신라군은 압록강 일대까지 진출했고 백제의 옛 지역에서도 당나라 세력을 공격했습니다. 당나라가 반격하면서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았지만 신라는 점차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675년 매소성 전투는 그 과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당나라의 대군을 상대로 신라가 큰 승리를 거두면서 당나라의 육상 공격 능력이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이어 676년 기벌포에서 당나라 수군까지 물리치면서 당나라가 한반도에서 장기간 군사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결국 당나라는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크게 줄이고 물러나게 됐습니다. 이로써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의 옛 영토 일부를 지배하는 통일 국가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과정을 신라의 삼국통일 완성으로 설명합니다. 물론 신라의 삼국통일을 바라볼 때는 한계도 함께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의 모든 영역을 완전히 하나로 통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고구려의 옛 북방 영토 상당 부분은 신라의 지배 영역 밖에 남게 됐습니다. 이후 고구려 유민을 중심으로 698년 발해가 건국되면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676년은 한국 고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당나라의 직접적인 지배 시도가 좌절되었고 신라가 독자적인 통치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문무왕은 통일 이후 국가를 안정시키는 작업도 추진했습니다. 전쟁으로 넓어진 영토를 관리하기 위해 지방 통치체제를 정비했고 확대된 국가를 운영하기 위한 여러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문무왕 이후 신라는 통일신라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됩니다.

 

문무왕의 죽음도 특별하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문무왕은 681년에 세상을 떠났고 동해의 대왕암에 장례를 치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무왕은 자신의 죽음 이후에도 나라를 지키고 싶다는 뜻을 남긴 것으로 전해지면서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이야기가 후대에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문무왕을 평가할 때 전설적인 이야기보다 역사적인 업적을 먼저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무왕이 남긴 가장 큰 업적은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무너뜨리고 당나라의 지배 시도까지 막아내면서 신라 중심의 통일 국가를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661년 왕위에 올랐을 때 신라는 아직 전쟁 중이었습니다. 백제는 멸망했지만 부흥운동이 계속되고 있었고 고구려도 건재했습니다. 당나라와의 동맹도 언제까지 유지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문무왕은 20년에 가까운 전쟁을 견뎌냈습니다. 663년 백제 부흥운동을 결정적으로 약화시켰고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켰습니다.

 

이후 당나라와의 전쟁에서는 매소성과 기벌포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한반도에서 당나라 세력을 몰아냈습니다. 결국 태종무열왕이 660년 백제 멸망이라는 삼국통일의 문을 열었다면 문무왕은 그 문을 끝까지 통과한 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60년 백제 멸망과 668년 고구려 멸망이 삼국통일의 중요한 과정이었다면 676년 당나라 세력을 몰아낸 사건은 그 과정을 완성하는 마지막 단계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7세기 신라 문무왕과 삼국 통일 완성이라는 주제에서 문무왕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단순히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이 아니라 외세인 당나라의 지배까지 막아내고 신라 중심의 통일 국가를 만들어냈다는 데 있습니다.

 

문무왕이 세상을 떠난 681년 이후 신라는 통일신라라는 새로운 시대를 이어가게 됩니다. 삼국 사이에서 오랫동안 이어졌던 경쟁은 끝났고 한반도 남부와 중부를 중심으로 하나의 국가 체제가 형성되었습니다. 그 시작에는 태종무열왕의 외교와 백제 정벌이 있었고 그 완성에는 문무왕의 긴 전쟁과 결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무왕은 신라 역사에서 단순한 정복군주가 아니라 삼국통일이라는 거대한 과정을 완성한 왕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